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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말하는 시민 정치의 진화와 민주주의의 미래
✍ BigdatArt | 📅 2025-06-01 07:57:27
한국 민주화 이후 비판적 지지 문화가 형성되었고,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에서 참여정신을 구현했습니다. 노무현의 서거 후 유시민은 정치에서 물러나 교육자와 해설자로서 활동하며, 시민의 조직된 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시민 정치의 새로운 국면을 지향하며,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유시민이 말하는 시민 정치의 진화와 민주주의의 미래

비판적 지지, 시민 감시, 민주주의 동력

비판적 지지의 기원과 노무현 시대의 시민 감시 의식

한국 민주화 이후 진보 진영에서는 ‘비판적 지지’라는 독특한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습니다. 이는 1987년 대선 시기, 일부 운동권 세력이 불완전한 야권 후보를 비판하면서도 독재 정권 교체를 위해 조건부 지지를 선택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시민사회는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보다, 잘못된 정책이나 결정에 대해서는 엄격한 감시자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로 계승되었습니다. 노사모 회원들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열린 모임에서 “대통령이 되면 우리 뭐 할까요?”라는 질문에 “감시!”라고 외쳐, 시민 감시의식을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노사모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지지할 것은 지지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비판적 지지’의 자세를 실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또한 권위주의적 구태를 벗고 시민의 토론과 감시를 중시했으며,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비판을 민주주의의 동력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비판적 지지 문화는 유시민을 비롯한 당대 진보 정치인들의 활동 기반이 되었으며, 권력 견제와 참여 민주주의의 토양을 형성했습니다.

참여정부와 유시민 장관: 이상과 현실의 간극

노무현 정부에서 유시민은 참여정신을 정책으로 실현할 핵심 인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2006년 2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년 3개월간 복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은 높았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강한 견제를 받았으며, 유시민 장관 본인도 “과천 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며 정치인이 아닌 행정가로서 국민만 생각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국민연금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국민연금 부채가 매일 800억 원씩 쌓인다”며 개혁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필요하면 돼지우리에서라도 일해야 한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공무원 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여러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던 그는 임기 말 다시 소신 발언을 했고, 여당 내부로부터도 “입 조심하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결국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되었고, 유 장관은 “시한폭탄의 시계소리가 들린다”며 고군분투했지만 성과 없이 사퇴했습니다. 퇴임식에서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굉장히 큰 좌절감에 빠진 정치인”이라 자조했습니다. 이는 참여정부가 추구한 이상과 마주한 현실의 간극 속에서 개혁 정치인이 겪은 고뇌였으며, 훗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노무현의 서거와 유시민의 충격, 그리고 정치 활동 중단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유시민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봉하마을에서 비보를 접하고 말없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만 흘렸으며, 주변 동지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해 죄인이 된 심정”이라며 통곡했습니다. 참여정부의 꿈이 좌절되는 모습을 지켜본 유시민은 깊은 상실감과 회의를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그는 친노 인사들과 함께 국민참여당을 창당하며 정치 재개를 모색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야권 통합에도 참여했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2013년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지난 10년간의 정치 활동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역구도 타파, 정당 혁신, 참여민주주의, 정책 경쟁이 실현되는 정치를 목표로 10년을 했는데 안 됐고, 될 가능성도 안 보이니까 이제 졌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해봤지만 졌음을 인정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제가 졌어요”라는 한마디에는 이상을 향해 분투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정치인의 깊은 좌절과 체념이 담겨 있었습니다. 노무현을 잃은 충격, 연이은 선거 패배, 보수 정권 하의 탄압 속에서 유시민은 더 이상 현실 정치에서 꿈을 실현할 경로를 찾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 문재인 정부와 절대적 지지 문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진보 진영에 새로운 희망을 안겼지만,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지지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노무현 시대에 비판적 지지를 외쳤던 시민들은 이번에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구호로 응답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팬덤인 ‘문파’는 노사모와 달리 권력에 대한 감시보다 절대적 성원을 택했습니다. 2003년 노무현 지지자들이 “감시”를 외쳤던 것과 달리, 2017년의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맹목적인 응원을 보냈고, 문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과 인사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노무현이 당부했던 “흔드는 사람들을 감시해 달라”는 수준을 넘어서는 맹목적 충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초기, 일부 열성 지지층은 자신들과 결이 다른 보도를 한 언론을 “기레기”라 부르며 조직적으로 비난했고, 친여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언론사 불매 운동이나 기자 실명 공격까지 벌어졌습니다. 진보 언론조차 정부를 비판하면 거센 항의를 받는 등 언론과 지지층 간 갈등도 나타났습니다. 한 언론 평론은 “과거엔 권력과 언론이 대립했지만, 지금은 언론이 정권이 아닌 지지자들과 적대하는 구도”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러한 절대 지지 문화는 정부의 추진력을 뒷받침하는 한편, 내부 견제와 자기반성의 기능을 약화시켜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폐쇄성을 낳았습니다. 이는 노무현 시대의 시민 감시 정신과는 대비되는 현상으로, 훗날 진보 진영 내 새로운 딜레마로 부상했습니다.

정치 대신 해설을 택하다: 유시민의 변신과 의도

문재인 정부 시기, 유시민은 지지 풍토의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정치 현장에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국민과 소통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2019년, 유시민이 이사장으로 있던 노무현재단은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출범시켰고, 유시민은 이를 통해 가짜뉴스에 대응하고 정부 정책을 쉽게 해설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의 입심과 명쾌한 논리는 큰 화제를 모았고, 정치권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유시민이 한마디 해 줘야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정치에 복귀할 생각이 없다”며 거듭 선을 그었고, 2020년 총선 방송 이후에는 정치 비평도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정치평론 은퇴 번복’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대중의 기대는 컸지만,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이자 정치 해설자로 남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그가 앞서 밝힌 좌절감 어린 고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졌어요”라는 말처럼, 그는 제도권 정치의 한계를 통감했고 이제는 정치 밖에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쓰고, 강연과 방송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그가 택한 새로운 실천이었습니다. 정치인이 아닌 분석가, 해설자의 길을 걷는 지금의 유시민은, 변화한 정치 참여 문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이 상징한 문재인 정부의 한계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 중 하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명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었던 윤석열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은, 검찰 개혁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은 임명 이후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비롯해 정권 핵심을 겨냥하는 행보로 돌아섰고, 이는 정치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였지만, 검찰 수장을 잘못 기용한 결과 개혁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사 검증을 총괄했던 조국 전 장관은 훗날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검증을 못 한 제 잘못”이라고 자책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윤석열 임명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윤석열 임명은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집권 세력이 권력기관 개혁을 시도했지만, 인사 판단 미스로 인해 검찰 권력의 저항에 직면했고, 결국 윤석열 정부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유시민은 당시 노무현재단 유튜브 등을 통해, 검찰과 언론 권력이 결탁해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문재인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에 치우쳐 제때 인사권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비판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시민에게 제도권 내부에서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고, 위로부터의 개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시민들의 조직된 힘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팬덤 정치의 부상: ‘개딸’ 현상이 보여준 것

최근 한국 정치에서는 전통적인 지지자 개념을 넘어, 팬덤에 가까운 적극적 지지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2030 여성 지지층, 이른바 ‘개딸’ 현상입니다. 개딸은 ‘개혁의 딸들’의 줄임말로, 2022년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2030 남성 표심을 집중 공략하자 이에 맞서 결집한 20~30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열정적이고 조직적인 지지 활동을 펼쳤습니다. 선거 기간에는 “이재명은 합니다” 같은 홍보물을 자발적으로 제작하고 배포했으며, 거리 유세 현장에 집단으로 참여해 응원을 보내는 등 활발한 행동을 이어갔습니다. 선거 이후에도 당원 가입을 통해 당내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치 참여를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은 때로 과도한 충성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과 노선을 달리하는 민주당 인사들에게 ‘수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집단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당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는 등 공격적인 행태도 나타났습니다. 한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개딸이라는 명칭은 ‘강성 팬덤’의 대명사처럼 쓰이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2030 여성 지지자가 극단적인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한 20대 여성 개딸 지지자는 인터뷰에서 “개딸은 폭력적이지 않다. 우리가 온갖 폭력 누명을 쓰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들은 오히려 긍정적인 방식으로 당을 돕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딸 현상은 한국 정치 참여 문화의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과거 X세대와 586세대가 광장에서 시위하고 정책토론 모임을 통해 정치에 참여했다면, MZ세대 일부는 아이돌 팬덤 문화와 결합된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유시민이 몸담았던 비판적 지지의 전통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정치 참여가 감시와 토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대와 비교할 때 팬덤 중심의 정치 문화는 그에게도 “정치 팬덤의 시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 신경안정제’ 유시민: 윤석열 시대의 역할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진보 진영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검찰 수사와 보수 언론의 공세 속에서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인사들이 궁지에 몰리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속속 뒤집히는 상황이 이어지자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불안과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시기, 유시민은 다시금 대중 앞에 나서 해설자이자 멘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 및 시사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야권 지지자들에게 필요한 조언과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의 발언이 나오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역시 유시민, 듣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인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어느새 그는 “국민 신경안정제”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2023년 말, 윤석열 대통령 탄핵설 등으로 정국이 요동치던 시점에 유시민은 방송에 출연해 냉철하게 정세를 전망하고 헌법재판소의 판단까지 예측했습니다. 이를 들은 지지층은 “유시민 말을 들으니 가슴이 뻥 뚫린다”며 안도감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는 김어준의 팟캐스트나 CBS 라디오 등에도 출연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진보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며, 야권의 맏형과 같은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붙여진 별칭에 대해 “내가 신경안정제가 되어준다니 다행”이라고 농담 섞인 언급을 하며, 지친 지지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줄 수 있음에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나 있지만, 유시민은 여전히 공론장의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로 건재합니다. 과거에는 국회 연단과 장관직이 그의 무대였다면, 이제는 유튜브와 방송이 그의 새로운 무대가 되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불안한 민심을 다독이며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노무현의 유산과 유시민의 호소

2023년 이후 유시민은 공개 석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가르침을 자주 상기시켰습니다. 노무현재단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그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의 어록을 인용하며,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도 시민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특히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일이 곧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는 그의 발언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 이재명 대표가 수사 압박과 정치적 사퇴 요구에 직면하자, 유시민은 “기 싸움에서 밀리면 진영 전체가 무너진다. 이재명이 쓰러지면 끝날 것 같냐”며 시민들이 단합하여 이재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재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 야당 대표가 굴복할 경우 야권 전체의 민주주의 수호 역량이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당대표직을 내려놓아선 안 된다”는 조언을 이재명에게 직접 전하며, 야권 내부의 단결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유시민의 호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을 오늘의 정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노무현의 묘비명에도 새겨진, 그의 정치적 유산의 정수입니다. 유시민은 지금이야말로 이 유산이 다시 살아나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유시민은 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는지를 이 메시지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결국 정치 불참은 체념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참여라 할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조직된 시민들의 움직임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진짜 힘임을 그는 믿고 있으며, 분석가이자 시민 운동가로서 그 불씨를 살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에게 배운 민주주의의 핵심 교훈을, 이제는 유시민이 시민들과 함께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과 시민의 정치, 새로운 국면으로

유시민이 더 이상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치평론가의 길을 걷는 이유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 정치문화의 흐름과 깊이 맞물려 있습니다. 비판적 지지로 상징되던 시민들의 성숙한 감시 의식, 참여정부의 이상주의와 좌절, 팬덤화된 지지문화의 확산과 그로 인한 갈등, 그리고 노무현의 유산인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 대한 깊은 신념까지—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서 유시민은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정립해 왔습니다. 그가 제도권 정치에 머무르지 않고 외곽에서 정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데는 단순한 전략적 선택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한 대통령 노무현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괴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정치인을 지키는 일이 제도의 힘이나 언론의 논리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절절한 체험,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믿었던 지지자들에게 느꼈던 원망과 아쉬움이, 그를 정치 바깥으로 물러서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무대에서 바라보는 위치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는 이제 시민의식의 진화를 제도 밖에서 뒷받침하며,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자이자 중립적 논객의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의석수나 권력의 높낮이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 영향력은 오히려 시민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며, 우리가 어떤 정치를 꿈꾸고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곧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이재명을 지키는 일 역시 언론이나 민주당 같은 제도적 장치가 아닌,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표상되는 지지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시민의 진정한 바람입니다. 그는 이를 직접 말하지 않아도, 말 없는 시선과 간헐적인 언급 속에 그 뜻을 담아왔습니다. 다행히도, 그 바람의 실체로서 ‘개딸’로 불리던 젊은 지지층은 이제 ‘빛의 혁명’이라는 새로운 정치 주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 존재를 지켜보며 유시민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집단적 각성과 실천이 이제 현실의 정치적 힘으로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시민 스스로의 책임과 실천 위에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유시민의 정치 불참은 그래서 단순한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시민 정치의 새로운 참여 방식이자 민주주의의 성숙한 진화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가 물러난 자리에 비로소 시민이 주인으로 서는 이 역설적인 변화는, 한국 정치의 문화적 지평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평론가이자 교육자이며, 때로는 대중의 멘토로서 정치의 물줄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가 다시 선거에 나서지 않더라도, 정치 그 자체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힘은 여전히 그에게 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말합니다. 정치는 국회나 청와대만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 말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체험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스스로 정치 무대를 내려왔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시민이 정치의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시민의 힘이라는 그의 신념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정치 바깥에서 정치의 본질을 묻고 실천하는 그의 행보는, 시민의 정치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자 실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유시민 이후의 정치, 그것은 결국 시민의 정치입니다. 그리고 그 정치의 다음 장면은, 바로 우리 손끝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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