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표현 논란, 차별 언어와 존엄의 경계를 다시 묻다

언어의 중요성

우리는 지금,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관습과 혁신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역사의 관성, 문화의 관습, 그리고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는 우리 삶의 양태를 바꾸어 놓았고, 그 변화의 중심에서 ‘언어’는 다시금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무의식적 태도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말은 관계를 잇기도 하지만, 쉽게 벽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의도 없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는 폭력으로 작동하고, 무심한 표현이 사회적 소수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언어의 윤리적 책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혐오의 심각성

특히 익숙한 단어일수록 그 파급력은 더 강력합니다.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그것이 내포한 차별과 폭력을 감지하기도 전에 일상에 녹아버립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거지’라는 단어입니다. 겉보기에 단순한 표현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고, 배제해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과거의 그림자: ‘거지’

‘거지’라는 말은 본래, 생존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공동체 사회에서는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로 인식되었고, 불우한 이들을 돌보는 일은 도덕적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불행은 함께 감당해야 할 현실이었고, 연민은 당연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이 단어는 점차 조롱과 경멸, 혐오의 감정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심화와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빈곤은 더 이상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실패로 간주되었고, ‘거지’라는 표현은 단순한 생활고를 넘어서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사람을 낙인찍는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변화는 언어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고 왜곡하는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현재의 풍경: 디지털과 언어

디지털 시대는 언어의 전파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밈과 유머, 댓글과 영상 자막 속에서 ‘거지’는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때로는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조롱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농담 속에는 오래된 혐오의 서사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말은 가벼워졌지만, 그 가벼움이 누군가에게는 깊고 무거운 상처로 남습니다. SNS의 익명성과 즉각성은 언어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장난이야”,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라는 말은, 언어가 가진 폭력성을 은폐하고 무력화시키는 알리바이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 이주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심한 언어는 그들의 삶을 더욱 고립시키고,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맙니다.

미래를 위한 변화: 언어의 힘 회복

이제 우리는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언어로 미래를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어떤 공동체를 상상하고 있는가? 먼저, 교육의 자리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언어는 지식이 아니라 감수성의 문제이며, 이는 어린 시절부터 길러져야 하는 습관입니다. 학교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존의 언어를 배우는 첫 번째 사회입니다. 차별적 언어가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존중이 어떻게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 미디어와 플랫폼 역시 언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콘텐츠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프레임을 구성합니다. 혐오 표현을 걸러내는 기술적 장치와 함께, 포용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콘텐츠가 더욱 필요합니다. 이야기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개인의 말버릇이 사회 전체의 문화를 결정합니다. 작은 농담을 멈추고, 타인을 깎아내리는 표현 대신 경청을 선택하는 태도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문화의 씨앗이며,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음 세대의 일상어가 됩니다.

맺으며: 언어의 변화

‘거지’라는 단어는 더 이상 단순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를 비추는 지표입니다. 언어는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말을 하지 않을 것인지, 어떤 말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마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운동은 늘 거대한 이념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변화는 오늘의 말 한마디, 지금의 표현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지금, 당신은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바꾸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