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립과 정신건강 위기, 돌봄 부재 시대의 현실
다시, 돌봄의 사회로 — 침묵하는 청년과 무너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하여
한 세기가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세상은 눈부신 속도로 변화해왔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기술혁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것은 관계의 단절, 돌봄의 해체, 그리고 정서의 고립이었습니다. 과거, 이웃이 울음을 터뜨리면 울타리를 넘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내밀던 그 정서는, 이제 회색빛 아스팔트 아래 사라졌습니다. ‘함께’ 살아가던 시대는 저물고, ‘혼자’ 견뎌야 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했습니다.
돌봄, 인간 존재의 시작이자 마지막
인간은 돌봄 속에서 태어나, 돌봄 속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언어도, 걷는 법도 모를 때 우리는 타인의 품에 기대어 삶을 시작합니다. 돌봄은 단지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존엄을 인정하고 실현하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방식입니다. 돌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전 과정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숨결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점차 이 돌봄의 의미를 잊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핵가족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도시화 등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으로 가정과 공동체가 담당해오던 돌봄의 구조는 빠르게 해체되었습니다. 상호 돌봄의 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돌봄을 감당해야 할 누군가의 희생과 버거움뿐입니다. 돌봄은 이제 권리가 아니라 짐이 되었고,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버렸습니다.
‘울지 않는 청년’, 침묵으로 말하는 세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등장한 ‘울지 않는 청년’은, 흔히 말하듯 강인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고, 지쳐 있으며, 상처받아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회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합니다. ‘버텨야 한다’, ‘네 책임이다’라는 메시지가 반복되는 사회 속에서, 울음은 사치가 되고, 연약함은 금기시됩니다. 이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설령 요청하더라도 그것이 외면당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지 않습니다.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견디며, 자신만의 고요한 방어막 속에 머뭅니다. 이 침묵은 감정의 결핍이 아니라, 돌봄이 사라진 사회에 대한 본능적인 자기보호입니다. 그 침묵은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입니다.
책임의 전가, 구조의 결핍
청년들이 마주한 고통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의 결함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돌봄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족이나 개인의 몫을 넘어섰지만, 우리는 공공의 책임으로 그것을 전환할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불안정한 일자리,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 단절된 사회적 관계망은 청년들의 삶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복지 제도는 이들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합니다. 자격의 문턱은 높고, 혜택은 불균형하며, 정책은 단편적입니다. 결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제도 밖에 남게 됩니다. 사회는 여전히 조용한 존재들을 ‘문제없음’으로 착각하고,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기를 망설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실패를 개인에게 묻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구조적 해법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균열, 돌봄의 공백
돌봄의 부재는 단지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돌봄이 있는 사회는 신뢰와 연대의 토대 위에 서지만, 돌봄이 사라진 사회는 경쟁과 고립이 지배합니다. 자원이 있는 사람은 돌봄을 구매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방치되고 소외됩니다. 이 돌봄의 격차는 계층을 나누고, 세대를 갈라놓으며, 지역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습니다. 돌봄이 사라진 공간에는 불신이 자라고, 무관심이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이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 전체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불안정의 씨앗이 됩니다. 돌봄 없는 사회는 결국 모두에게 위험한 사회입니다.
돌봄의 윤리, 인간 존엄의 실천
우리는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갓난아이든, 병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돌봄은 특정 시기나 계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전 과정에 걸친 보편적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 돌봄을 실현하는 것은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윤리적 책무입니다. 이윤과 효율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는 돌봄의 가치를 외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적 성숙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이제 경쟁보다 협력, 효율보다 공존, 성과보다 사람을 앞세우는 철학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돌봄은 인간 존엄의 가장 실제적인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회적 계약: 돌봄의 재구성
이제 우리는 돌봄을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공공 돌봄 체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하고, 특히 청년과 취약 계층에 대한 심리적·정서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 관계를 회복하고 고립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교육과 미디어, 문화 운동 또한 필수적입니다. 돌봄이 약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삶의 문제’임을 공유해야 하며,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지속 가능한 돌봄 공동체를 재건해야 합니다.
울 수 있는 사회, 웃을 수 있는 공동체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는, 누구나 울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고통을 감추지 않아도 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곳. 그런 사회야말로 인간 존엄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입니다. 지금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작지만 지속적인 실천입니다.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무심코 챙기는 안부, 연대의 마음을 담은 정책 하나. 그것이 오늘을 바꾸고, 내일을 밝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맺음말: 다시, 돌봄의 사회로
우리는 이제, 돌봄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약입니다. ‘울지 않는 청년’의 침묵을 들을 수 있는 사회, 돌봄이 삶의 중심이 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향해야 할 내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따뜻한 손길 하나가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돌봄은 거창한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방식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돌봄의 회복에서, 우리는 다시 공동체를, 다시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