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지우려는 손, 그 너머를 응시하며
무지개와 사회의 풍경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사회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운 가능성과 깊은 균열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흐르지만, 정작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과 문화예술 공간, 이 사회의 지성적·문화적 심장을 이루던 장소들의 연이은 폐쇄는 단순한 건물의 소멸이 아닌, 우리의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이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징후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근본적 가치—자유로운 표현, 다양성의 존중, 소수자의 인권—이 구조적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드러냅니다.이 글은 단지 공간의 상실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실이 가져오는 사회적 딜레마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안하는 목소리입니다.
공간의 상징성과 그 상실의 파장
대학은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의 양심이 깃드는 곳이며, 서로 다른 목소리가 충돌하고 또 화해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저항의 서사는 바로 이 공간에서 자라났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며 사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왔습니다.하지만 이제 그 공간들이 하나둘씩 닫히고,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지성의 위축이자 표현의 자유가 숨을 죽이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대학이 침묵하면, 사회는 생각하기를 멈춥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혐오와 무관심이 차지하게 됩니다.문화예술 공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때로는 거울 너머를 상상하게 만드는 창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창은 점점 닫히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검열의 칼날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창작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다름'에 대한 감수성을 잃고, 획일성과 순응만을 강요하는 풍경으로 퇴행하고 있습니다.
존엄과 공존, 그 위태로운 경계
오늘날 가장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람’ 그 자체입니다. 특히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자들의 존엄은 여전히 혐오와 차별의 벽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환영받지 못하고, 존재 자체가 불편함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사회는 필연적으로 침묵의 벽을 쌓습니다. 그 침묵은 대화를 가로막고, 연대를 방해하며, 결국 공동체를 붕괴시킵니다. 다양성을 배제하는 사회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말라가게 하는 것이며, 진보와 창의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자해적 구조에 다름 아닙니다.
대학, 그 이름의 무게를 다시 묻다
과거의 대학은 시대를 묻고, 사회를 견인하며,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여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빛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검열과 억압이 침투한 곳에서 과연 진정한 학문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비판과 질문이 사라진 캠퍼스는 더 이상 ‘대학’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세계를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목소리와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고, 그 색을 지우지 않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그것이 진정한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공존’이라는 가장 시급한 과제
공존은 단순히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름을 차별이 아닌 존중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혐오에 맞서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는 거창한 선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웃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됩니다.혐오의 말보다 존중의 침묵이 더 깊은 울림을 줄 때, 우리는 진정한 공존의 문턱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턱을 넘는 데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제도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인간다움입니다.
무지개는 지워질 수 없습니다
무지개는 하나의 색이 아닌, 서로 다른 색이 나란히 서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사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체성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누군가 무지개의 한 색을 지우려 한다면, 결국 무지개는 무너지고, 그 손은 우리 모두의 얼굴을 지우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무지개를 지키기 위해, 말해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포용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존의 가치는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의 선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작고 낮은 목소리들이 모여 거대한 울림이 되고, 그 울림이 침묵의 벽을 허무는 날,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차별과 혐오를 넘어서, 모두가 존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우리가 이 시대에 남겨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입니다.